노동조합 간부들의 비리 사건이 터질 때마다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노조 간부들의 비리가 언론에 대서특필되면 가뜩이나 노동조합에 대한 그릇된 혐오감이 비정상적으로 가득 차 있는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의 노동운동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더욱 커지고 그렇게 되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권리를 지키기 위해 벌이는 처절한 투쟁조차 우리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행위로 폄하되는 정서가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회사의 전근대적이고 불법적이고 후안무치하고 천박하고 안하무인격인 노동조합 탄압 행위에 저항해 근래 보기 드문 격렬한 투쟁으로 맞선 것에 대해서도 스스로 교양인이라고 생각하는 시민조차 “저렇게 할 수밖에 없는 건가요? 저런 폭력행위가 당연한 건가요? 상당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사람 죽여 놓고 난 저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하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법이 왜 있나요? 진압전경들은 또 무슨 죈가요? 그들이 죽든 살든 우린 저렇게 할 수밖에 없었으니 옳다고 말할 건가요?”라는 반응을 보이게 되고 인터넷에서는 그러한 글에 대해 “심금을 울린다.”면서 공감을 표하는 반응이 쏟아지는 현상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편파적인 언론의 보도
언론들은 예나 이제나 노동운동의 과격한 측면만 부각하는 자극적인 보도를 하고 그 보도를 보는 시민들은 우리나라 노동운동이 성숙하려면 아직 멀었다는 식의 결론을 내버리게 된다. 노동자들의 투쟁을 “경찰 버스가 화마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시위대와 경찰 간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습니다. 민주노총 소속 노조원 5천여명이 현대하이스코 하청업체 해고자들이 농성중인 공장으로 진입하려다 경찰과 충돌한 것입니다. 경찰 80여명과 근로자 200여명이 중경상을 입고 경찰차 10여대가 불에 탔습니다.”라고 보도하는 방송의 뉴스나 신문의 기사를 통해서는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그렇게 격렬하게 싸워야 하는 이유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한 경제신문은 덤프연대가 파업에 돌입한 다음 날 “강경투쟁이 ‘속죄’해법 아니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민주노총 지도부가 잇단 비리 사태로 비난 여론이 일 때마다 적반하장 식으로 강경투쟁을 선언했다면서 덤프연대투쟁을 그 예로 들었다. 이후 화물연대, 레미콘노조의 연쇄파업도 민주노총의 이런 노선에 따른 것이라고 당당하게 소설을 쓸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평소 케인즈주의에 입각한 미국 자본주의 방식의 노자간 타협적 질서조차 시장경제주의에 반한다는 경영자적 편견을 갖고 있는 우리 사회의 전문가들은 민주노총 간부의 비리와 덤프, 화물, 레미콘 노동자들의 투쟁이 아무 관련성이 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노조 간부의 비리를 빌미로 노동운동의 타락을 부각하고 노동자들의 권리 투쟁을 억압하려고 하는 것이다.
노사협조주의와 애사심의 재등장
노동조합 간부들에 대한 비리가 잇달아 터지고 언론이 그것을 대서특필하고 “노동운동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명사들의 칼럼이 이어지면서 나타나는 현상 중의 하나는 평소부터 ‘노사협조주의’나 ‘애사심’을 강조해 온 어용 조직들의 발언권이 현장에서 부쩍 높아진다는 것이다.
얼마 전 한국노총 소속인 한 중소기업 노동조합에서 위원장 선거를 치렀을 때도 회사는 노사협조주의를 표방하는 후보를 내세우면서 드러내놓고 선거에 개입했는데 “지금 위원장이 한 번 더 하면, 그때는 민주노총으로 가게 된다.”, “현 위원장은 정치를 하고 싶은 야망이 있다. 지난번 노동조합 행사에 민주노동당 소속 국회의원이 참석했던 것이 바로 그 명백한 증거다.”라는 마타도어들이 엄청난 파급력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
현 집행부는 그러한 비난에 대해 효과적인 반론을 펼칠 여유조차 없었다. 현 집행부의 위원장은 “선거 기간 내내 우리는 상급단체 노조 간부들의 비리 사건에 대해 해명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랐다.”고 했다. 선거를 치른 날,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새벽녘에 휴대폰으로 짤막한 문자 메시지가 왔다. “소장님, 우리가 완패했습니다. 나중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이와 비슷한 일들을 최근에 자주 겪었다. 현 집행부의 성향이 지나치게 투쟁적이라고 몰아붙이면서 ‘노사협조주의’를 표방하는 세력들이 최근 노동조합 선거에서 부쩍 상승세를 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노동조합 집행부가 교체되고 나면 전임 집행부가 세웠던 야심찬 사업 계획들은 모두 취소되고 노동조합이 회사와 몇 년 동안 싸워서 겨우 확보했던 노동조합 교육 시간들마저 대폭 축소되거나 없어져버리는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예전에는 “회사 쪽에 붙었다고 한번 찍힌 노조 대의원은 우리 현장에 도저히 발을 붙일 수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하던 노동조합에서도 회사 쪽 입장을 드러내놓고 대변하는 ‘어용’들이 "민주노총은 더 이상 정당성이 없다."고 당당하게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다.
노동자들의 몫
대학 교수들이 입시부정을 저지르는 사건이 가끔 터져도 우리 사회에 대학교는 반드시 필요하다. 교사가 현직 검사 아들의 성적을 여러 차례 조작했고 그 아들은 검사가 임대한 오피스텔에서 특별 과외를 받아왔다는 사실이 알려져도 학교나 검찰 조직 자체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마찬가지로 노조 간부들의 비리 사건이 가끔 터진다 해도 노동조합은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조직이고 노동운동은 우리 사회에 해로움보다 유익함을 더 많이 가져다주는 활동인 것은 변할 수 없는 진리이다.
대기업 노동조합이나 노조 상급단체 간부들의 비리가 마치 우리 노동운동 전체가 타락한 증거인 양 사람들이 오해할지라도, 그 여론 때문에 노동운동이 한낱 사람들의 비웃음을 받는 대상이 된다고 할지라도, 그래서 시대를 거슬러 마치 70, 80년대로 돌아간 것처럼 노동자 권리를 주장하기가 더욱 어려운 세상이 된다고 할지라도 노동자들은 삼보일배를 하는 심정으로 노동자 권리를 확대하는 일을 자신의 몫으로 끌어안을 수밖에 없다. 노동운동의 혁신은 그렇게 노동자들에 의해 시작되고 완성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