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재 열사 49재가 고양시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화정역에 갔다.
지난 10월 16일 열사의 죽음과 노점탄압에 대한 항의집회에 참석했을 때
우연히 옆 자리에 이근재 열사 부인이 앉아 오열하고 계셨으나
차마 따뜻한 말 한 마디 못 건냈다.
이번에는 꼭 손이라도 한번 잡아 드리고 싶었다.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으나,
그리고 잃어버린 것 중에서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사람의 생명이라,
내가 내미는 손길이 얼마나 위로가 될지 모르겠으나...
어쩌면 살아 있는 내가 위로 받기 위하여,
내게 남은 삶을 더 분명하게 살아가기 위하여,
이 길이 끝맺음과 결실이 있는 길이라는 확신을 가지기 위하여,
나를 위해서,
그리고 살아 남은 모든 이들을 위하여,
꼭 그곳에 가서 그 분을 뵙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이런 기대는 처음부터 뭔가 잘못된 것임을 알았다.
이근재 열사 49재는 제2차 민중총궐기이었고, 제2차 민중총궐기는 권영길 후보 선거운동이었다.
전빈련이 배타적으로 지지하는 권영길 후보에게 투표하자는 대회사로 시작하는 대회.
민중적 학연, 지연, 혈연을 모두 총동원해야 한다는 발언이 이어지는 대회.
그런 대회를 민중대회라고 말할 수 있을지, 나는 잘 모르겠다.
결국 발언을 하긴 했지만,
이런 자리에서 새로운 진보가 권영길 선본과 얼마나 다른지 말하는 것은
가신 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 자리에 모이신 분들에 대한 신의도 아닐 것이다.
결국 권영길 후보 선거운동원이 된 듯한 느낌이다.
그러나 나는 발언을 했다. 거기 모여 있는 노점상, 빈민 여러분을 향하여.
거기 어디엔가 앉아 계실 분들, 내가 가락시장, 보문시장, 경동시장에서 뵌 분들,
따뜻하게 내 손을 잡아주시던,
한 평생 굳은 일로 못이 박힌 손,
나무 등걸 같은 손들을 기억하며,
나는 발언을 했다.
진보야말로 진보에게 고유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진보가 무능력한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했다. 누가 진보를 무능력하다고 말하는가!
"진보는 토건경제로 국토환경을 송두리채 파괴할 능력은 없지만,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생태적 가치경제를 구현할 능력은 진보에게만 있습니다."
"진보는 주가조작으로 폭리를 취할 능력은 없지만 '연기금의 사회책임투자'로 기업에 대한 국민의 통제권을 강화할 능력은 있습니다.
이 땅에 론스타와 같은 먹튀 투기자본이 발붙이지 못하게 할 능력,
주식시장을 안정화 할 능력,
금융의 안정성과 공공성을 확립할 능력,
국민 모두에게 좋은 경제를 만들 능력은 진보에게만 있습니다."
"어떤 후보는 자본에 대한 규제는 더 풀며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더 강화하여
현재와 같은 고용 없는 성장 방식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도 성장을 통해 고용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그런 방식의 성장을 통해 고용을 늘리고 복지를 확충할 능력이 진보에게 분명 없습니다.
그러나 정반대로 교육과 고용과 복지를 통해
국민 모두에게 좋은 성장을 이룰 능력은 분명히 진보에게 있습니다.
이것이 진보에 고유한 진보만의 능력입니다."
그러나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민중저항에 기대는 정치 이외에 다른 어떤 정치도 할 수 없는 진보는
이미 진보에 고유한 능력을 상실했다..
저항의 방향, 비전, 대안을 만들고, 유포하고, 설득하고, 반대파를 논박할 수 없다면,
저항의 조직화도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무능한 저항만이 계속될 뿐이다.
그렇다면 진보도 없을 것이다.
'새로운 진보'가 없다면 진보는 앞으로 없을 것이다.
그리고 정치에서의 동지관계는 과거를 함께 하는가가 아니라 미래를 함께 하는가에 의하여 결정된다.
* 기호10번 한국사회당 금민 후보가 이근재 열사 49재에 다녀온 뒤 자신의 블로그에 적은 글입니다. 민주노총과 전빈련의 배타적 지지는 정치적 자유를 억압하며, 진보의 미래를 어둡게 합니다. 이날 있었던 금민 후보에 대한 실례에 관해 민주노동당은 반성하고, 또 금민 후보에게 사과해야 합니다. 덧붙여 민주노동당 배타적 지지 방침안은 기필코 철회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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