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바람과 추위, 고립감과 싸우면서 목숨을 건 고공농성이 오늘 부로 한 달이 다 되는 25일차가 되었다. 여기에 12일부터 시작된 단식농성이 4일차를 맞고 있다. 인간의 체력으로는 견디기 힘든 시간이 점점 더 지나가고 있다. GM대우창원 비정규직 동지들은 최악의 조건에서 오로지 투쟁정신 하나로 간신히 버티고 있다. 이제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2. 지난 12일 GM대우창원비정규직지회는 교섭권 위임을 결정했다. 우리는 지회가 교섭권 위임을 결정하게 된 과정에서 겪었던 고민과 고통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교섭권 위임은 사실상 투쟁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박일수 열사 투쟁 “합의서”, 울산지역건설플랜트노동조합의 “사회적 합의서”,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동지들의 “확약서”가 휴지조각이 되어버린 뼈아픈 패배의 경험은 교섭권 위임의 실천적 결과를 훤히 들여다보게 하기 때문이다. 대리교섭을 통한 대우자동차 노사간의 합의서는 공문구로 포장되어 있고 또한 지회 동지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책임지지 못하겠다는 “최후통첩안”일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 교섭권 위임은 지난 GM대우자동차 본조가 GM자본과 벌인 특별노사협의회에 비해서 “교섭 전, 교섭 후 회의를 통해 5단위 회의를 열고, 대우자동차 노사간에 합의서를 작성할 것” 같은 최소한의 장치가 추가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번 교섭권 위임이 몇 가지의 전제 조건을 달았다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변한 것은 없다고 본다.
3. GM자본은 비정규직 지회와 창원, 전국의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인해 압박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지회를 교섭대상으로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원청 실사용자임을 거부했다. 이번 교섭권 위임과 같은 대리교섭은 대리주의를 낳는다. 대리주의는 투쟁의 주체의 요구와 의지를 파괴한다.
4. GM대우창원지회는 비록 교섭권을 위임했지만 여전히 교섭 요구안의 일관된 원칙을 사수하고 있다. 그것은 장기직, 단기직 가리지 않는 복직 희망자 전원에 대한 조건 없는 복직이다. 지회의 이 안은 정리해고를 인정할 수 없는 노동조합의 당연한 요구이고 비정규직 내부에서도 또 다시 차별을 강요하는 자본의 분할책동에 대한 단호한 거부이다. ‘노동자는 하나다’ 이 원칙, 고공단식농성 동지들이 목숨을 걸고 배수진을 친 이 “지침”을 단호하게 사수하는 것이 다시 얼어붙어 있는 현장을 재조직화하고 지역과 전국의 연대투쟁의 불씨를 지펴 올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5. GM자본은 지회의 이 요구안에 대해서 특별노사협의회의 안이 “충분히 노력한 안이고, 농성단이 요구하는 것은 선동적인 의미를 넘지 못한다”고 선제공격을 하고 있다. 정리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의 전원 복직 요구가 과연 선동적인 의미를 넘지 못한단 말인가? 그러면 목숨을 건 고공농성자들이 과연 해고된 조합원의 복직 숫자를 늘리기 위한 숫자놀음 이상을 가지고 있지 못하단 말인가? 우리는 GM자본의 잔인하고 기만적인 태도에 치떨리는 분노를 금할 수 없다.
6. 여전히 GM자본은 지난 특별노사협의회 안을 고수하고 있고, 지회는 정리해고 조합원의 전원 복직이라는 당연한 요구를 하고 있다. 이 사이에 절충과 타협의 여지는 전혀 없다. 그렇다면 교섭권 위임은 지회에서 받을 수 없는 안을 가지고 중재안, 절충안(사실상의 최후통첩안) 이라는 이름으로 지회에 던져질 것이고 지난 특별노사협의회 안에 대해서 그러했듯 지회는 이 안을 결코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또 다시 대리교섭에 의한 중재안, 지회의 거부, 원청노조의 연대거부라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인가?
7. 이런 최악의 수순이 이번 교섭권 위임에서 또 다시 발생한다면 모든 것은 특별노사협의회의 합의안이 나온 당시의 원점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이 원점은 그냥 원점이 아니다. 이미 고공농성 동지들은 육체적으로 극한 상태에 몰려있기 때문에 얼마를 더 버틸지 모르기 때문이다. 고공농성 투쟁 거점이 성과 없이 하루 빨리 사라지기를 바라는 자들은 누구인가? 원만하게 해결되어 노사간의 평화(노동자들의 죽음)가 유지되기를 바라는 자들은 누구인가?
8. 금속노조 경남지부는 노동자 단결의 정신에 입각해서 20일 지역 총파업을 결의했다. 우리는 이 결정을 환영한다. 그런데 교섭권 위임 이후에 금속 경남지부는 17일-19일에 걸쳐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하고 총파업 돌입 날짜는 운영위에 위임하기로 했다.
9. 교섭 상황과 상관없이 지역 총파업은 일정대로 사수돼야 한다. 대우자동차 본조와 창원지부가 공장 내의 비정규직 동지들에게 반노동자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고, 지회 동지들이 현장으로부터 밀려나 있는 상황에서 투쟁 승리의 유일한 열쇠는 지역 연대투쟁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마창노련의 빛나는 지역연대투쟁의 역사가 부활됨으로써만 목숨을 건 고공노성은 승리할 수 있다. 금속노조의 지역 총파업과 더불어 GM자본에 일격을 가할 수 있는 민주노총 경남본부 차원의 실질적인 공장진입투쟁이 조직되어야 한다. 오만한 GM자본에게 노동자 대단결의 정신이 이곳 창원에서 살아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승리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이 길, 함께 가자. 민주노조운동의 전통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함께 확인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