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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순 병든 노모와 스물여섯 아들 `애틋한 모자의 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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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순 병든 노모와 스물여섯 아들 `애틋한 모자의 정`
이길옥(74, 가명)씨는 이북이 고향인 남편과 결혼해 늦둥이로 아들을 낳았다. 마흔여덟에 ‘하늘이 내려준 아이’는 손 귀한 집 ‘쉰둥이’였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 `비 한 방울이라도 젖을까`, 늘 염려하며 산 26년 세월. 12년 전 남편과 사별한 그녀는 병원에서 건물 화장실이며 계단, 바닥 청소를 해왔다.
14년 동안 먹고 싶은 게 있어도 참고, 입고 싶은 게 있어도 지나쳤다. 이씨는 “김치에 장아찌로 세끼를 때우며” 아득바득 벌었다. 그렇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한 가지, 의지할 곳 없는 어린 아들을 기죽이지 않고 떳떳하게 공부시키려는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아들이 필요하다면 팔뚝 하나를 떼어 줄 엄마였다.
몸뚱어리 하나로 거센 세파를 이겨내며 억척스레 산 그녀지만 세월 앞엔 무력했다. 담석증, 안면 신경 이상, 심장병, 식도파열로 다섯 번이 넘는 대수술을 받아, 핏기 없는 몸에 더 이상 칼 댈 곳이 남아있지 않다. 매일 밤 수술한 자리가 아파 잠자리를 뒤척이는 노모는 수면제를 먹지 않으면 하루 두세 시간도 눈을 부치지 못한다. 그녀의 몸은 촛농처럼 녹아내려 무너지고 있다.
“세상에 그런 아들이 없습니다. 밤마다 이부자리를 펴주고, 가만히 드러누워 있으면 어디 잘못됐나, 몇 번이고 와서 문열어보고, 내가 밥을 못 먹으면 죽 써서 한 숟가락 떠주고… 죽으라면 죽으라는 시늉까지 다하는 아이입니다.”
“천 원짜리 학용품이 필요하다고 하면, 주머니에 2천원을 넣어준 엄마”만 바라보고 엇나갈 만도한데, 아들 김준용(26, 가명)군은 학비를 벌어가며 대학 생활을 했다. 새벽에는 신문배달을 하고 강의가 끝나면 몸을 부려 돈을 벌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준용군은 10만원이든, 20만원이든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을 꼬박 어머니께 드렸다. 어머니의 애틋한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한 그는 병든 노모를 먼저 생각하는 ‘착한 아들’이 돼버렸다.
엄마는 고장 난 기계, 그래도 영원히 함께…
3년 전 준용군의 노모는 식도파열로 4개월 동안 병원신세를 졌다. 몸 안에 공기가 들어가 심장, 폐, 간 할 것 없이 썩어버려 오늘 내일 장사를 치를 판이었다. 노모의 나이 칠십 줄, 이미 고장 날 대로 고장 나 있었다.
준용군은 수술실에 들어가는 담당의사의 발목을 붙들고 “우리 어머니 살려 달라”고 애걸해야했고, 수천만 원에 달하는 병원비 때문에 동사무소에 찾아가 1종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매달려야 했다. 3일이 멀다하고 기백만 원씩 영수증이 쌓였지만 경제적으로 도움 받을 수 있는 곳도, 서러운 마음을 의지할 만한 곳도 없었다. 하루가 급한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김군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누군가의 팔과 다리를 붙잡고 통사정을 하는 일뿐이었다.
불황에 갓 대학을 졸업한 준용군은 공부를 더해볼 요량으로 대학원 과정을 밟았지만 당장 돈을 벌기위해 학업을 중단했다. 어머니를 보살피기 위해 병원 근처에 일자리를 잡아, 11시가 넘어 집에 들어가 새벽 5시 첫차를 타고 출근했다. 계속 공부를 한다는 건 욕심이 돼버렸다.
“어머니는 기계로 치면 고물이란 걸 저도 알죠. 어머니께 그래요. 꿈속에서 저승사자가 와도 5년만 봐달라고 가지 않겠다고 매달리라고… 제가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 앞으로 5년만 더, 10년만 더 어머니가 살아 계셨으면 좋겠어요.”
노모는 하나밖에 없는 손 귀한 아들에게 자신이 장애물이 되고 있는 건 아닌지, 매일 근심이다.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고 세월 앞에 무력해진 자신을 한탄하며 한숨을 내쉰다. 몸이 나아지는 게 아니라 점점 죽어가고 있음을 체감하면서, 자신의 고장 난 몸 때문에 공부 잘하는 아들 끝까지 뒷바라지해주지 못한 걸 서글퍼한다.
“어머니가 몸이 많이 아프니까, 식사를 잘 못하세요. ‘어머니 안 드시면 저도 안 먹는다’고 ‘금쪽같은 아들이 안 먹겠다’고 우스갯소리로 말씀드리는 데 어떻게든 한 숟가락 떠 넣어드리는 게 제 마음이 편해요.”
74세의 병든 노모와 26세의 취업 준비생 아들. 늙은 엄마의 머릿속엔 오로지 아들 생각뿐이고, 큰 손자 같은 아들의 머릿속엔 언제나 엄마 걱정뿐이다. 모자가 함께 살아온 부박한 시간만큼이나 이들은 서로의 근심을 조금씩 덜어내며 살을 부비고 살아가고 있다.
※ 이길옥씨 가족(강원도 동해시)에게 도움을 주시길 원하시는 분은 월드비전(☎ 02-784-2004)로 연락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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