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농성자들이 단식농성에 돌입했다는 사실은 하루가 지난 이후에 듣게 되었습니다. 경남지부의 권고안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지회에서 권고안을 받았습니다.
노동자의 투쟁은 단서와 조건을 단 투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노동자의 힘이 부족해서 이만큼밖에 하지 못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 연대를 조직하고 투쟁을 조직했지만 노동자의 힘이 이정도밖에 모이지 못했다고 해서 손가락질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다만, 최선을 다하지 않은 채 조건을 달아 이 조건을 받아들이면 연대를 하겠다거나 이 조건을 받아들였을 때 무엇을 하겠다는 것은 노동자의 투쟁이 아니라 상인들의 거래에 불과할 것입니다.
GM창원지회 동지들이 고공농성을 결정하고 투쟁에 돌입했을 때, 그 심정은 이 투쟁을 하면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자본의 집요한 착취와 끊임없는 탄압에 그냥 숨죽이고 살아가는 것을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노동조합을 하면서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나가라면 언제든지 나가야 하고 파리목숨만도 못한 인생을 살아야 하는 이유와 책임이 우리 노동자에게 있지 않음을 알고 있기에 투쟁을 선택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600명이 넘었던 창원지회 동지들이 하나둘씩 떨어져 나가고 이제 남아 있는 정말 한숨도 안되는 소수의 동지들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투쟁이 고공농성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투쟁을 선택했던 조합원들이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을 것이고, 그래서 자본에 대항해 '악'소리라도 내야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 투쟁을 결의했기에, 우리가 투쟁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수단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면서 선택한 투쟁이었기에 안탑깝고 더 많은 과제와 책임을 지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이는 GM창원지회 동지들만의 모습은 아닐 것입니다. 송전탑에 올라갔던 코오롱 동지들의 모습에서도, 서문대교에 올랐갔던 하이닉스 동지의 모습에서도 그리고 열사들의 죽음과 분신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동지들의 심정에서도 똑같은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비바람과 최소한의 식량만을 먹고 20일 넘게 고공에서 농성을 전개했던 동지들이 밧데리도 없어서 연락도 잘 안되고 물도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곳에서 단식을 선택했습니다. 적절한 선에서 정리할 생각이었다면 자본이 제시한 안을 받고 적절한 선에서 투쟁을 마무리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안은 지금까지 투쟁했던 동지들과 여전히 노동조합을 믿고 함께하고 있는 동지들을 배제한 안이었기에 도저히 받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수없이 짜갈라 놓은 자본의 분류에 순응하라는 안이었습니다. 그것을 받느니 작렬히 산하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노동자의 힘이 부족해서 어떤 요구도 쟁취할 수 없다면 요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다만 노동자의 자존심을 지키며 투쟁하며 산하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럴때에만 투쟁했던 동지들이 다시 노동운동의 홀씨라도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본에게 구걸하고 하나를 주고 하나를 받으며 동료를 배신하느니 투쟁을 통해 힘을 키우는 방법을 배우고 투쟁을 통해 단련된 동지들이 노동자의 원칙을 갖고 언제 어디서든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씨앗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더 멀리 더 길게 보며 한걸음 한걸음을 선택하겠다는 것입니다.
고공농성자들의 단식은 그 자존심을 지켜줄 것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자본에 맞서 최선을 다해 투쟁하지 못하고 교섭과 거래로 상황을 빠르게 종료하는데에만 급급해 있는 자들에 맞서 노동자의 자존심을 걸고 당당하게 끝까지 투쟁하자는 것입니다. 정규직노조만을 대화대상으로 여기는 자본에게 "알겠습니다. 그렇게라도 어떻게 좀 해 주십시요"라고 구걸하기 위해 돌입한 투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본가들은 수없이 많은 산재로 노동자들이 죽어나가도, 수없이 많은 노동자들이 분신과 죽음으로 항거해도 눈하나 까딱하지 않습니다. 오직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할 힘은 노동자의 단결된 연대투쟁의 힘이며 투쟁의 확산입니다. 그럼에도 그 투쟁을 모아내기 위해 분투하기에 앞서 어떻게 적정선에서 이 상황을 종료할 것인가만을 바라보고 있는 자들에게 모든 권한을 넘긴다는 건 투쟁에 대한 포기입니다. 그러하기에 고공농성자들은 단식을 선택한 것입니다.
끝까지 노동자의 절개를 지키며 패배하더라도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투쟁을 전개했으면 합니다. 그 투쟁에 함께 하겠습니다. 투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