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공장. 이 말에서 무엇을 떠올릴 수 있을까? 수천, 수만 명의 조합원을 거느리고 교섭을 통해 높은 수준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확보하는 ‘잘 나가는’ 노조의 이미지? 정권에 의해 십자포화를 맞고 있는 노동귀족? 제대로 된 투쟁은 조직 않고 대화와 타협에 매달리는 민주노총을 좌지우지하는 배후세력?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절한 투쟁을 외면하는 정규직 노조의 모습?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핵심 근거지였고, 남한 민주노조 운동을 이끄는 기관차 역할을 했던 대공장 노동운동. 그러나 현재 대공장의 이미지에서 긍정적인 모습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본격화된 대공장 비정규직 투쟁 덕분(?)에 대공장 정규직 노동운동은 조합주의와 실리주의의 늪에 빠져 있음이 확인되었다. 6월 말 산별전환투표를 통해 ‘계급적 단결’을 위해 산별노조로 전환하겠다고 하지만, 무언가 새롭게 기대를 걸 만한 상황으로 변화할 것인지는 미지수다. 곳곳에서 ‘묻지마 산별’에 대한 비판 입장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소수의 정규직 현장 활동가들은 끊임없이 투쟁을 조직하고, 계급적 운동을 복원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들은 특히 사내하청 투쟁에 적극적으로 연대하면서 노조 집행부의 통제를 넘어 독립적으로 현장 투쟁을 조직하려 애쓰고 있다.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조립3부 대의원으로 활동하다가 자본의 탄압으로 구속, 해고된 김우용 동지 역시 그 중의 한 명이다. 2004년 2월, 비정규직 부당해고 투쟁, 노동강도 완화 투쟁 등 각종 현장투쟁 조직을 이유로 구속된 이후 2년간의 옥살이 끝에 공장으로 돌아온 그는 원직복직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원직복직 약속을 이행하라는 거죠.”
김우용 동지를 만나러 가는 길은 평탄하지는 않았다. 공장 건물의 맨 윗 층으로 올라가 기계 사이를 지나 옥상으로 통하는 문을 열고 나갔다. 거기서 또 다시 약 8m 높이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니 그제야 커다란 환풍구 사이로 자그마한 텐트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바람막이로 친 비닐이 바닷바람을 어느 정도 막아 주었지만 전신이 울릴 정도로 나는 기계의 소음과 진동은 막아 주지 못했다. 함께 올라간 선봉대원들과 함께 자리를 잡고 농성의 계기에 대해 물었다.
“회사 측에서, 제가 구속되고 나서 해고를 시켰어요. 이후 현장 조합원들의 항의로 노사합의 통해 원직복직을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석방 이후에 인력대기 상태로 있어요. 원직복직 약속을 이행하라는 것을 목적으로 올라온 거죠.”
김우용 동지는 2004년 2월 구속되었고, 3월에 해고됐다. 2년간의 옥살이 동안 동료들은 구출투쟁을 이어갔고, 회사는 노동조합과 복직에 합의했다. 06년 1월에 석방된 그는 2월 27일 공장에 출근했고, 자신이 원래 근무하던 반으로 출근했다. 그가 원한 것은 자신이 일하고 투쟁하던 곳으로의 ‘원직복직’이었으므로. 그러자 회사는 그에게 ‘무단결근’이란 처분을 내렸다.
“회사는 인력대기실로 나오라고 했습니다. 조립3부가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강제발령을 내겠다고 했지요.”
원직복직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김우용 동지는 6월 7일 오후 3시, 노동조합과 맞붙은 도장 공장 지붕 위로 올랐다. 공장 벽면에는 “원직복직 쟁취”와 “구속자 석방”이라는 구호를 쓴 플랜카드를 내렸다. 김우용 자신의 원직복직과 평택 미군기지 확정 저지 투쟁으로 구속된 두 노동자의 석방을 요구로 농성에 돌입한 것이다.
“투쟁은 이제 시작이다.”
회사 측의 가시적인 반응은 아직 없다. 노동조합 사무실이 있는 건물 옥상이라 사측에서 함부로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리저리 상황을 파악 중이라고 한다. 노동조합은 어떠냐고 물었더니 크게 기대하지 않는 말투다.
“오늘, 내일 중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얘기하고는 있는데... 그렇게는 얘기해요. 꼭 해결하겠다고... 그러고 있죠.”
김우용 동지가 공장으로 들어온 이후, 기아노조는 회사와 협상을 해 왔지만 진전된 안을 내오는 것은 없었다. 농성 투쟁 요구안이 무엇인지 다시 확인했다.
“주요한 요구안은 원직복직입니다. 그리고 구속된 노동자 석방하라는 것과 (기초질서 지키기 캠페인, 정문통제 강화 등) 현장탄압을 중단하라는 것이죠. 비정규직에 대한 탄압을 회사에서 지속적으로 하는 것에 대해 관심을 촉발시키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현대자본은 비자금 조성으로 구속된 정몽구 회장에 대한 대대적인 구명 운동을 펴는 한편 노동자들에게는 회사위기를 빌미로 현장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5월부터 화성공장은 현대자본은 ‘출입시간 규정 준수’를 내세우며 공장 출입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기아 비정규직 지회에 대한 도발과 탄압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으며 지회의 임투를 앞두고 공세는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농성 시작한 후, 공장 내 반응을 물었다.
“일단 올라 와서 조합원들이 더 많이 관심 갖게 됐고. 낮에 중식집회 하면서 3라인 조합원들도 다시 나오고 있어요. 활동가들도 결합하고 점심 선전전 결합하면서. 이제 시작이죠. 현장 제 조직들도 미리 계획되어 있진 않았지만 같이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임단협 시기지만 사측의 현장통제도 있고 해서 대응할 수 있는 기회로 봐야겠다는 움직임이 있어요.”
“오늘 중식집회에는 대오가 150은 넘었습니다. 많이 나온 거죠. 3라인 조합원들이 결합하면서 훨씬 좋아진 것 같습니다. 활동가들보다 조합원들이 더 많이 나왔어요. 엔진 구동 쪽이 나오면 더 많아질 것 같습니다. 일단 집회에 많이 모여야 자신감이 생기죠.”
기아자동차에는 현장조직 뿐 아니라 ‘노동해방 선봉대’라는 정규직 활동가들의 투쟁 조직이 별도로 존재한다. 선봉대는 지난 주 부터 원직복직 문제와 기초질서 지키기와 같은 현장통제 시도에 항의하는 출근투쟁을 진행해 왔다고 한다. 3주일 전부터 중식 선전전이 진행됐고, 현재는 농성을 중심으로 출퇴근 선전전과 중식집회를 중심으로 공장 내 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원직복직 뿐 아니라 정규직 비정규직 공동투쟁 복원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한 번 친 천막은 짧은 기간 내에 쉽게 걷히지 않는다. 원직복직, 구속자 문제, 현장통제 강화, 임단투, 산별전환투표, 비정규직 지회 임투, 모두가 따로따로 존재하지 않고 얽혀 있다. 심상치 않은 타이밍에 돌입한 천막농성, 김우용 동지에게 투쟁의 전망에 대해 물었다. 너무 질문이 많다며 너스레를 떨던 동지는 진지한 얼굴로 대답한다.
“원직복직이 해결나면 내려갈 수 있는데, 쉽게 해결 안 날 것 같다는 생각 들어서 올라오게 된 거죠. 그리고 지금은 정규직 노동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작년부터 이어왔던 투쟁 흐름들이 많이 느슨해진 상황입니다. 올해 비정규직 싸움이 큰 쟁점이 될 수밖에 없는 조건이예요. 제가 농성하는 것을 계기로 정규직 노동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 투쟁하는 공동투쟁을 복원해 내는 것, 이런 것들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에 하나의 단초가 되는 역할.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집회도 같이 하고.. 잘 되지 않겠냐 생각하고 있어요. 그것이 잘 되어야지 이 농성이 상징적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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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회를 할 때면 허리에 로프를 묶고 지붕 끝 쪽에 선다. 불의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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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붕에서 내려다 본 집회 장소와 끝없이 이어진 공장 건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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