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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정체성과 노동운동
하종강(노동문제연구소장)
노동문제를 가르치지 않는 사회
대학에 강연을 하러 가서 강연을 준비한 학생들에게 그 취지를 물으면 이렇게 답하곤 한다. "대학생들도 국민의 한 사람인데, 노동문제를 이해해야지요." 참 기특한 학생들이다. 그러나 그렇게 대답하는 학생들의 얼굴에서 자신들도 곧 노동자가 된다는 것을 미리 짐작하는 기색은 없다. 노동자가 되거나 적어도 노동자의 가족이 될 수밖에 없는 학생들이 노동문제를 자신과 관계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강 건너 남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넓은 아량을 가지고 이해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의 제도권 교육과 언론이 지금까지 학생들의 생각을 그렇게 조율하고 훈련시켰기 때문이다.
방송사에 신입사원 교육을 하러 갔다. 수백 대 일의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신입사원들은 모두 명문대학교 출신일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다녔던 학교에서 수석을 놓치지 않았던 수재들이다. 어릴 때부터 경쟁에서 져 본 적이 없는 그 신입사원들은 표정과 자세부터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 그 자신만만한 표정 속에서 자신들이 곧 노동조합원으로 활동하게 될 것을 미리 짐작하는 기색은 찾아볼 수 없다. 우리 사회에서 성장하는 수십 년 세월 동안 제도권 교육과 제도 언론을 통해 노동조합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을 일방적으로 주입 받았을 뿐이어서, 자신들도 노동조합에 가입해야 한다는 사실에 자존심마저 상해하는 표정이 되기도 한다. 이것은 결코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파업을 준비하고 있던 조종사들에게 교육을 하면서 나는 이런 질문을 해 보았다. "조종사로 취업하면서 '내가 노동조합의 깃발 아래 모여 파업하게 될 것이다'라고 미리 짐작했던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보십시오. 파일롯트가 되겠다는 청운의 꿈을 안고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하면서 하다못해 '노동조합이라는 단어가 나의 인생과 관계를 맺게 될 것이다'라고 짐작했던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보십시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며칠 뒤에 구속될 것을 각오하고 파업까지 해야 하는 사람들이 수십 년 세월 동안 그것을 까맣게 모르고 살았다. 이것은 결코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노동자·노동조합·노동운동 등에 대한 그릇된 혐오감을 수십 년 세월 동안 국민들에게 주입시켜온 나라다. 문제는 그 잘못된 시스템 대한민국에서 수십 년 세월을 살아온 사람들이 그 사실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경제활동인구의 가장 많은 숫자가 노동자이고 국민들 대부분이 노동자이거나 그 가족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그 어떤 제도권 교육과정에서도 노동자의 권리와 노동조합의 역사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는다. 그렇게 성장한 우수한 인재들이 대기업 노무관리자가 되면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노동조합을 탄압한다. 헌법이 보장한 노동자의 신성한 권리를 탄압하는 사람들이 죄의식조차 없다. 이것은 결코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그렇게 정치인이 된 사람들이 노동문제에 대한 법과 제도를 만들고 정책을 결정한다. 한 달 동안 네 명이나 되는 노동자가 스스로 목 메달아 죽고, 불 타 죽고, 떨어져 죽었는데도 국회에서는 그것에 대해 발언하는 의원이 없다. 서울시의회 102개 의석 중 유일한 민주노동당 소속 심재옥 의원이 서울시에서 연간 100억원 이상의 지원을 받는 4개 직업전문학교에 대한 행정감사를 하면서 2천5백명의 졸업생들의 취업 실태를 파악해보니 대부분 취업한 회사에서 1년을 넘기지 못했고 취업한 곳의 3분의 1이 최저임금 미달 사업장이었다. 파견회사나 용역회사가 상당한 수를 차지하고 있어 결국 서울시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용역사업에 사람을 대주는 꼴이었다. 심 의원이 예비 노동자인 직업전문학교 학생들에게 노동법을 정규 교육으로 가르칠 것을 직업전문학교 교장들에게 주문했더니 회의장에 난리가 났다. 다른 의원들이 "이것은 지금 노동운동을 유도하는 발언입니다"라는 말을 시작으로 "취업자들 중에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이 몇 퍼센트냐?", "그런 사람들 데려다가 인성교육 다시 시켜라", "일순간에 엎어 버리려고 하는 것들이 문제다", "노동자라고 하지 말아라 직원이라고 표현해라"라는 말들을 해대다가 급기야 토론 자리에서는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민주노총 같은 조직은 해체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니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한가. 이것이 바로 우리 사회 정치인들의 노동문제에 대한 이해 수준의 현주소다. 이것을 어떻게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볼 수 있는가? 도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역사발전과정과 사회정체성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은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 가 자본주의 사회를 건설한 과정은 정상적인 나라와 매우 달랐다.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중세 사회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시민계급이 출연했다. 해방된 농노와 몰락한 영주, 숙련 노동자와 소생산 자영업자들이 모두 시민계급으로 모였다. 성실하게 노력하는 시민들이 자본을 축적했고 그 물적토대가 시민혁명을 가능하게 하면서 자본주의로 이행했다.
근대와 중세를 가르는 가장 큰 사상적 차별성은 "인간은 평등하다"는 생각이 상식인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라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을 상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상식이 된 것은 무구한 인류 역사 속에서 2백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 이전의 훨씬 긴 역사 속에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종류가 구별되는 것이 상식이었다. 시민계급이 형성되고 시민혁명이 발생한 과정은 사회의 구성원들이 평등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각자에게 어떤 시민적 권리가 존중돼야 하는지를 피눈물나게 깨닫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정상적인 나라에서는 그런 과정들을 공통적으로 거치면서 자본주의 사회를 건설했다.
그런데 우리는 역사 발전 과정에서 그 소중한 체험의 기회를 박탈당했다. 시민적 권리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역사 발전 과정에서 통째로 생략돼 버린 것이다. 일제 식민지라는 기형적 방식으로 어느날 갑자기 자본주의 사회로 편입됐다. 양반과 상놈이라는 신분제도의 모순을 우리가 스스로 깨닫고 무너뜨린 것이 아니다.
친일파와 그 후손들은 사회 상층부에 진입하여 정치인·경제인이 된 반면 독립투사의 자손들은 단칸방에서 지지리 고생하며 살았다. 근대사회가 성립되고 자본주의가 확립되는 중요한 시기에 우리 사회를 지배했던 세력이 도덕적 우월성을 상실한 집단이었다는 뜻이다. 그 전통을 이승만독재정부와 군사독재정권이 고스란히 이어 받았다. 역사 발전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각종 제도와 정책을 결정하고 교육과 언론을 장악하고 있는 인간들이 국민들 앞에서는 무언가 많은 것을 뒤에 감추고 있어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내용들을 국민들에게 절대로 가르칠 수 없었던 것이다. 국민 대부분이 노동자이거나 그 가족으로 살아가는 사회에서 국민들이 노동자의 권리와 노동조합의 역할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가진다는 것은 부정한 방식으로 재산을 모으거나 부당한 방법으로 정권을 탈취한 사람들에게 거의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으리라.
분단상황 역시 권력과 자본의 유익을 위해 철저하게 이용됐다. "교사가 파업을 해서 학교가 문을 닫고, 공무원들까지 파업을 해서 행정기관이 마비되고, 철도노조 파업으로 기차가 멈추고, 발전 노조 파업으로 전기까지 끊겼을 때 북쪽에서 쳐들어오면 너희들 도대체 어떻게 할거냐?"면서 수십 년 세월 동안 국민들의 위협했다. 분단상황이 몇 배나 과장됨으로써 노동자들의 기본권이 유린당하고 그 반대급부로 잇속을 챙겨온 집단이 우리 사회를 지배했다는 측면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우리 사회에서 기득권 세력, 또는 보수세력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기득권 기반은 자본주의가 자리잡는 1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흔들린 적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땅의 '보수'는 '수구'와 같다. 해방이 되고 전쟁이 끝나도 그들의 이익기반은 흔들리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가 "50년만의 정권 교체"라고 아무리 자랑해도 보수세력이 걱정하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다. 잠시만 참으면 다시 자신들의 세상이 올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기대는 노무현 정부의 출현으로 무너졌다. 이 땅의 보수세력은 유사이래 처음으로 자신들의 시대가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느낀 것이다. 보수세력이 총단결한 것은 그 때문이다. 반면에 국민들은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사실만으로 우리 사회 개혁이 이미 완성됐다고 안심하거나 또는 지나치게 앞서 간다고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친노동자적 정부'라는 호칭은 국민들의 그러한 착시현상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이었다. 역사상 가장 개혁적인 대통령이 들어섰다는 나라가 가장 보수적인 사회로 역행한 것은 그 때문이다. 역사의식으로 단련된 조직 활동 경험이 전혀 없는 대통령에게 그 상황에서 중심을 제대로 잡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그 왜곡되고 비틀린 역사가 어느덧 한 세기를 지났다. 일제 식민지 40년, 분단 60년, 그 와중에 군사독재정권 30년 세월을 겹치기로 겪으며 건설된 자본주의가 정상적인 자본주의가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어불성설이다. 우리 사회 노동문제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비틀리고 왜곡된 역사 발전 과정을 통찰할 수 있는 역사학자의 눈을 가져야 한다. 노동자들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가압류는 그 잘못된 구조의 한 단면이다.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가압류의 배경
사람들은 보통 "법 앞에서 만인은 평등하다"는 것이 진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민법' 체계에서만 진리일 뿐, '사회법' 체계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원칙은 아니다. "사람은 모두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생각이 기초가 되어 수백 년의 엄격한 봉건사회 신분제도를 무너뜨렸고, 그 신념이 체계화된 것이 민법, 상법 등 '시민법'이다. 그러나, 사회가 발전하면서 형식적으로 법 앞에 평등한 인간이 현실적으로는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되었고 실제로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새로운 법률체계가 요구되었다. 그래서 새롭게 체계화된 것이 노동법, 사회보장법 등 이른바 '사회법'이다. 불평등하게 적용함으로써 평등을 구현하는 것이다. 강한 사람의 권리는 규제하고 약한 사람의 권리는 보호하는 것이 사회법의 이념이다.
같은 사건을 시민법 관점으로 보느냐, 또는 사회법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같은 사건에 대해서도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돈을 갚지 못하면 살을 1파운드 베어가겠다"는 계약은 시민법 이념의 계약자유원칙에서는 유효하지만 사회법 이념에서는 사회정의에 반하기 때문에 당연히 무효가 된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어릴 때부터 시민법 이념에 대해 익숙하게 훈련받는다. 유치원에서부터 시작되는 교통신호 지키기 교육이 대표적인 시민법 훈련이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똑같이 지켜야 하는 원칙이다. 반면, 사회법에 대해서는 배울 기회가 거의 없다. 대부분의 법과대학에서 노동법은 선택과목이다. 사법시험에 노동법이 출제된 적이 없으니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지 않다. 1차 시험에서 굳이 노동법을 선택할 수는 있으나 노동법은 기업법에 비해 공부해야 할 분량이 열 배도 넘는다. 노동문제에 대해 특별한 사명감을 느끼는 극소수의 수험생만이 사법시험에서 노동법 과목을 선택한다. 그렇게 사법시험에 합격한 연수원생들이 공부하는 사법연수원에서도 노동법은 선택과목이다. 우리나라에서 판·검사, 변호사로 출세하거나 돈을 버는 데에 노동법은 거의 보탬이 되지 않으니 사법연수원에서 노동법을 공부하는 연수원생 역시 극소수에 불과하다.
사법연수원 노동법 세미나에서 몇 차례 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첫날 근로기준법 강의를 마치고 강의에 대한 평가를 하는 자리에서 한 연수원생이 말했다. "저희들이 뭔가 알고 있을 거라고 짐작하지 마십시오. 오늘 소장님 강의를 들은 연수원생들 중에서 90% 이상이 근로기준법을 오늘 이 자리에 와서 처음 보는 사람들일 겁니다." 천 명 가까운 사법연수원생들 중에서 노동법 세미나에 참석하는 사람은 50명 남짓이다. 그 기특한 소수 중에서도 90% 이상이 근로기준법을 그날 거기서 처음 본다는 것이다. 이것은 거의 공포영화에 가까운 상황이다. 노동법에 무지한 법조인들을 만들어내는 완벽한 시스템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배출된 법조인들이 노동법 사건을 올바른 사회법 관점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사회법 사건인 노동문제를 계속 시민법 관점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가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사용함으로써 회사에 경제적 손실을 입힌 사건을 일반 민사사건의 채권채무와 똑 같은 시각으로 취급하여,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 한 사람에게 수억원의 가압류 결정을 하는 비상식적인 일이 우리나라 법원에서 가능한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씨가 분신자살을 했을 때, MBC의 취재진이 서울의 한 명문대학 교수에게 그 사건을 어떻게 보느냐고 묻자 그 교수는 또렷또렷 이렇게 답했다. "돈을 빌려준 채권자와 돈을 빌려간 채무자가 있다고 합시다. 돈을 빌려간 채무자가 그 빚을 갚지 못한 것이 부담스러워 자살한 것에 대해 채권자인 회사가 왜 책임을 져야 합니까? 나는 그 사건을 그렇게 봅니다." 그 대학교수는 참 불쌍한 사람이다. "나 참 무식한 사람이오. 나는 가장 사회법적 사건을 가장 시민법적 관점으로 판단하는 사람이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헌법재판소가 필수공익사업장 직권중재 제도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리거나, 근로기준법의 임금채권 최우선 변제권을 위헌이라고 폐기한 것이나, 단체협약을 위반한 사업주를 형사처벌할 수 없다고 결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헌법재판관이라고 해서 특별히 노동법에 대한 이해의 수준이 높을 리가 없다. 헌법재판관이나 법원의 판사들에게 노동법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그동안 어디에서 어떻게 배우고 익혔느냐고 묻고 싶다.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기본권
우리나라 헌법 제33조는 '노동3권'이라고 불리는 조항이다. 노동자들은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세 가지의 권리를 신성한 권리로서 보장받고 있다. 그 권리는 헌법 이전에 노동자에게 보장된 자연법적·태생적·천부적 권리이다. 노동3권은 이른바 '통일적 권리'로서 그 중의 하나라도 빠지면 나머지 두 가지의 권리도 제 구실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노동3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표현이 제한된 지식과 부족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자본가와 관료들에게 노동3권을 마치 "각각 나눌 수 있는 세 가지의 다른 권리"로 오해하게 만들어 "단결권과 교섭권은 보장하되 행동권은 보장하지 않는다" 따위의 헛소리를 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파업은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초래한다. 철도나 지하철 노조가 파업을 하면 시민들은 TV 뉴스에 나와 "왜 시민의 발을 볼모로 파업을 하느냐? 집단이기주의다"라고 비난한다. 그런데, 노동자들이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치고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발생시키면서 파업할 수 있는 권리를 전 세계의 대부분 국가에서 노동자의 신성한 노동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으니 이상하지 않은가? 형식적으로라도 그렇게 해야만 국제기구에 가입할 수 있으니 이상하지 않은가? 권력과 자본은 왜 노동조합을 그토록 혐오하면서도 노동자들이 권리를 확대하기 위해 투쟁할 수 있는 권리를 법률로서 보장하고 있는 것일까? 길게 설명할 것도 없이, 그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노동조합의 활동이 사회 전체에 유익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이 사회에 오로지 해롭기만한 집단이기주의적 조직이라면 그 권리를 법률로서 보장할 리가 없다.
노동조합이 없다면 자본주의 사회은 소수의 특권을 누리는 세력들만의 이해가 무자비하게 관철되는 심각한 불평등구조를 벗어날 방법이 없다. 노동조합은 자신들이 소속돼있는 사회의 불평등구조 때문에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들을 올바르게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 지금까지 200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그 역할을 수행해왔고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다. 부도덕한 특권세력일수록 노동조합을 혐오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우리 사회 '악의 축'들에게 노동조합은 가장 확실한 '적'이 되는 것이다.
내가 노동문제연구소의 소장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 노동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라고 왜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와 예술의 향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나 같은 사람까지 자연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기에는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현실이 너무 척박하다. 노동자들의 권리가 확대되는 것이 사회 전체에 불이익한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국민들을 속여온 수십 년 세월 동안 형성된 기형적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우리 사회 노동문제는 올바로 해결되지 않는다. 사회 전체에 만연한 노동조합 또는 노동운동에 대한 그릇된 혐오감을 걷어내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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