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해 노동절이 되면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해 온 민주노총이, 이번에는 청계천 일대에서 몇몇 이벤트를 하고 시청 앞에서는 평화롭게(?) 기념대회를 진행했다. 50만원을 들여 임대한 시청광장은, 잔디가 훼손되면 배상을 해줘야 한다고 하니 행여 누군가 악덕기업주 화형식이라도 할라 치면, 뜯어말려야했을 판이다.
올해는 이례적으로 4·30 전야제도 생략됐는데, 이같은 노동절 기획에 대한 현장 노동자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많은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고 있는 현실에서 더 강력한 투쟁이 필요합니다" -이주노조 조합원
민주노총 중앙이 마련한 서울에서의 행사가 이렇게 평온하게 끝난 반면, 순천 청주 등지에서는 비정규직 사업장을 중심으로 투석전과 가두시위, 고공농성이 이어졌다.
사실 지난해에도 '축제분위기'였던 서울과 달리,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지회를 중심으로 한 충북의 노동자들은 주유소를 배수진으로 삼아 격렬한 화염시위를 벌인 바 있다.
올해 시청앞 기념대회는 평온하기는 했어도 축제분위기(주최측이 축제분위기를 의도했건 그렇지 않건)와는 거리가 멀었고 노동자들의 표정은 어둡기 그지 없었는데, 지난해와 올해 노동절은 사실 중요한 차이가 있다.
산업을 멈추는 총파업, 어디로 갔나?
지난해 '제115주년 노동절 기념 전국노동자대회'에서 민주노총은 "앞으로 1년후인 2006년 5월 1일 세계노동절대회를 기점으로 하여, 모든 산업과 지역에서 세상을 멈춰 세울 수 있는 강력한 총파업에 돌입할 것임을 엄숙히 선포"한 바 있다.
현장의 노동자들이 벌이는 극한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2005년 평화기조의 노동자대회가 축제분위기에서 진행될 수 있었던 데는 '세상을바꾸는투쟁'이라고 명명된 야심찬 계획이 주는 자족감도 있었을 터. 무상의료 무상교육, 비정규직 차별철폐, 노사관계 법제도 민주적 재편이라는 3대 요구를 내걸고 1년을 기약하는 계획은 분명히 모종의 죄의식을 덮을 만큼 압도적이었다. 조금은 찜찜할 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바로 그 5월 1일이 되었는데 약속된 총파업 혹은 그에 대한 해명은 온데 간데 없고, 또다시 "세상을 바꾸는 하반기 무기한 전면 총파업" "80만 전조직이 참여하는 전면적인 총파업"이라는 약속만 반복됐다.
이날 기념대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모두 보았겠지만 '대동단결'을 상징하는 대동놀이가 시작되자 대오의 절반 혹은 3분의2가 정말이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이제는 익숙해 진 '세상을바꾸는투쟁 선포식'이 있고 난 직후다.
마치 울화가 치미는 사람에게 춤을 권하는 것 마냥 참석자들이 머쓱해 하면서 자리를 떴다면, 잘못 본 것일까?
대회 기조는 '국민과함께하는노동운동'?
현재의 민주노총이 약속된 총파업을 벌일만한 실력을 가졌기 때문에, 당장 총파업에 돌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조합원들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당장의 투쟁을 방기하면서 약속만을 되풀이하는 모습은 지도부에 대한 신뢰마저 무너뜨릴 게 분명하다.
"문화도 좋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뭔지, 총연맹이 할 게 뭔지 확실하게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KM&I 조합원
이번 노동절 기념대회는 정말로 울림이 없다. 메시지도 없다. 청계천에서 진행된 문화예술전과 영화상영 OX퀴즈 등등에서 굳이 메시지를 찾으라면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 쯤이 될 듯 하다.
그러나 투쟁하는 노동자들로부터 한 목소리로 비판받는 '노동절 기념대회'를, 국민과 함께 한다고 한들 이를 반길 이들은 누구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