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투쟁을 자본가여론에 종속시키는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
“선거는 우리가 순종을 통해서, 즉 적에게 양보하는 것을 통해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는 다름 아닌 과감한 저항을 통해서 존중하게 만들었고 하나의 세력이 되었습니다. 존중받는 것은 오로지 힘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의 세력인 한에서만 속물들은 우리를 존중합니다. 속물에게 양보하는 사람은 속물에게서 경멸받습니다. 속물에게 양보하는 사람은 더 이상 아무런 힘도 없습니다. 부드러운 장갑 아래서도 철권을 느낄 수 있는 법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느끼게 해야 합니다.” - 프리드리히 엥겔스
한국노동운동 내에서 이른바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론’이 제기되었을 때, 그 주장은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일부에서는 위기에 처한 노동운동을 회생시키기 위한 현명한 발상이라고 추켜세웠다. 동시에 반대편에서는 노동자들의 계급적 단결을 저해하고 독립적인 투쟁대열을 해체시키는 빤한 개량주의적 술책이라고 비판을 가했다. 비판의 목소리는 점점 더 왕성하게 퍼져나갔다. 거세게 제기되는 비판 앞에서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론이라는 견해는 주눅 들었다. 이 견해를 단호하게 옹호하는 노동운동가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제는 누구도 공공연하게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론을 제창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마치 격퇴당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현실은 그런 외관과는 다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론’자들은 도처에서 ‘진지전’을 수행해왔다. 특별한 이론적 선언 없이, 요란한 구호 없이, 두더지가 땅굴을 파고들어오듯 이들은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의 정신을 널리 퍼뜨려왔다.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
이른바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론은 고유하고 엄밀한 사상적 체계를 갖고 있지 않다. 어찌 보면 그것은 일정 모호한 심리상태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꼬리를 다리 사이로 감추고 웅크린 채 불쌍한 눈빛으로 적의 동정심을 사려는 시도일 뿐이다. 그것은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썩은 지푸라기라도 붙잡으려는 가련한 심리를 나타낸다. 이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이런 것이다. “지금 노동자들의 힘은 너무나 약하다. 반면 자본가들은 너무나 완강하고 무섭게 덤벼들고 있다. 우선 그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릴 필요가 있다. 게다가 사회 분위기도 안 좋지 않은가. 국민들이 우리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듯하다, 등등.”
지금 자본가들의 공격이 매우 비타협적이고 거칠게 가해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에 반해 ‘현재’ 노동자들의 힘이 약하다는 것, 따라서 자본가들과 정부의 공격을 단호하게 물리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실로부터 이들은 마치 숙명적인 것처럼 패배주의적 결론을 끌어내려고 한다. 즉 자본가들의 야수적인 공격에 비해 노동자들의 힘이 너무나 약하고 전반적으로 볼 때 자본가들이 사회 여론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일단 우리는 머리를 숙이고 눈치를 살피면서 온건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보기에 지금 같은 상황에서 만약 노동자들이 더 비타협적으로 완강하게 저항한다면 자본가계급의 심기를 더욱 불편하게 만들 것이다. 그 결과 노동자들에 대한 저들의 공격이 더욱 걷잡을 수 없게 되므로, 가급적 저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방식으로 얌전하게 행동해야 (또는 행동을 자제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얌전하게 요구를 제기하면 전체적인 사회 여론이 노동자들에게 우호적인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자본가들과 정부 역시 우리에게 양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그들은 믿는다.
한마디로 이들 주장의 본성은 노동자의 독자적인 투쟁력을 강화함으로써 권리를 쟁취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본성은 자본가들과 중간계급에게 노동자계급이 온순하고 기꺼이 양보할 수 있음을 증명하며, 나아가서 그들의 동정심을 끌어냄으로써 약간의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들의 사고 속에서 노동자가 자기 힘을 대담하게 동원하는 것은 적들의 심기를 건드리고 중간자들이 지지를 철회하도록 만드는 모험주의적인 것이다. 이들의 심리상태는 정확히 “노동자들을 세상의 주인으로 도약할 수 있는 강력한 혁명적 계급이 아니라 불쌍한 가엾은 존재”로 간주하는 목사들이나 시민단체 지식인들의 관점을 반영한다. 또는 자본주의 체제의 강력한 공세 앞에 주눅 들고 압도당해서, 노동자들은 가급적 자본주의 체제에 도전하지 말아야 한다는 자포자기의 패배주의를 반영한다.
불행하게도 이런 종류의 정신이 이제는 민주노총의 주요 조직체계와 다수의 단사 노동조합들, 그리고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의식을 장악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과장이 아니다. 노조관료제를 구성하고 있는 민주노총 상급단체 간부들과 단사 노조간부들이 투쟁과정에서 수행하는 주요한 역할 중 하나는 그 투쟁이 대중의 직접적인 행동과 충돌로 나아가는 것을 통제하는 것이다. 그들이 보기에 노동자들의 비타협적인 투쟁은 늘 무모하고 모험주의적인 것이며, ‘골치 아픈’ 일이다. 그들이 보기에 가엾은 양들은 사자들의 심기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 그들이 보지 못하는 것은 노동자들은 가엾은 양이 아니며, 만약 지도자들이 그 힘을 대담하게 동원하려 한다면 사자도 능히 제압할 수 있는 강력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렇게 ‘골치 아픈’ 상황으로 뛰어드는 대신, 노조관료들은 ‘현명한’ 방안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런저런 시민단체 회원들의 시위방식을 보게 된 것이다. 중간계급 시민단체들은 파업이나 대중적 행진을 조직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주로 1인 시위 같은 개인적 의사표현 방식을 선택하게 된다. 주요 생산을 담당하고 있고 다수를 구성하고 있으며 공통의 요구로 대규모로 연결되어 있는 노동자계급과 달리, 분산되어 있고 생산의 주변부에 깔려 있으며, 심지어는 서로 경쟁하고 있는 허약한 계급이라는 치명적 한계 탓에 이들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만한 흥미 유발성 개인적 퍼포먼스에 관심을 기울인다. 무언가 의존할 만한 버팀목을 자기 내부로부터 끌어낼 수 없는 이들은 부르주아 출신의 국회의원들에게 호소하거나, 길거리를 지나가는 군중에게 무작위로 호소하여 여론을 자기편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더욱이 이런 방식의 활동은 국가권력의 심각한 탄압에 직면하지도 않는다. 가면을 쓰고 퍼포먼스를 하거나 여론의 동정심을 호소했다고 해서 경찰들에게 구타당하거나 구속되거나 손배가압류를 당하지는 않는다. 이런 투쟁(?)은 자본주의 체제에 아무런 위협도 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이 노조관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가급적 자본가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야만 하겠다고 생각한 노조관료들은 중간계급 시민단체들의 방식이야말로 가장 안전하고 적합한 방식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1인 시위를 하거나 삼보일배를 비롯한 퍼포먼스를 하는 것에 대해 ‘무모’하고 ‘모험주의적’이라고 비난하는 노조관료는 이제껏 단 한 명도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이 보지 못하는 것은 이따위 투쟁방식들은 노동자계급이 가진 강력한 힘을 매장시킨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투쟁방식은 강력한 칼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은 칼집에 고이 모셔둔 채, 주머니에서 연필깎이 칼을 꺼내들고서는 “이것은 강력한 무기다!”라고 외치는 자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민주노동당
민주노동당은 노조관료들의 주장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기본 기조 자체가 노동자계급 대중의 직접적인 행동과 투쟁 속에서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힘을 끌어낸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에게는 대중의 자기 주도적인 투쟁이 아니라 민주노동당 출신 국회의원들의 활약이 더욱 절실하다. 마찬가지로 파업과 대규모 시위보다는 어느 시기에나 선거가 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민주노동당은 자본주의의 권력체계가 인정해주고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점잖게 활동하는 것, 기존 지배계급 정당의 대표자들 및 정부기관 대표자들이 ‘합리적 선택’을 하도록 촉구하는 것 등을 자신의 방침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을 제창했던 인물들이 민주노동당 지도부에 몸담고 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오히려 이들에게 민주노동당 활동이란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을 실현하기 위한 유력한 통로일 뿐이다. 중간계급 성향의 여타 시민운동가들과 이들이 잘 어울릴 수 있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국민과 함께’라는 미명 아래 노동자계급으로부터 점점 더 거리를 두는 행보는 필연적으로 지배계급의 칭찬을 받게 된다. 가령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이 ‘시위문화’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를 내자, 김원기 국회의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논평을 냈다. 즉 노동자들과 농민들이 그동안 폭력적 시위로 “민주주의를 위협”해 왔는데, 이에 반해 강기갑 의원의 발언은 “참으로 깊은 고뇌와 성찰 끝에 나온” 것이며, “용기와 소신에 가득 찬 발언”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강기갑 의원과 같은 “결단과 용기는 우리 사회와 나라의 격을 한 단계 높이는 귀중한 전기가 될 것”이라며 한껏 치켜 세워주었다.
어떤 발언과 행동이 자본가계급에게 기쁨을 주고 칭찬을 불러일으킨다면, 그것이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어떤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일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노동운동 내의 영향력
그런데 이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은 단지 일부의, 의식적으로 개량주의를 추구하는 운동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미 그것은 상당히 저변을 확장했다. 특히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이 하나의 엄밀한 이론체계가 아니라 패배주의에 사로잡힌 채 동정심에 호소하려는 심리상태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했을 때, 그러한 심리를 공유하는 모든 노조관료들은 자연스럽게 이 방향으로 이끌린다. 의식적으로 개량주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일반 노동조합 간부들 역시 저 심리상태로부터 완전히 단절할 수 있는 확고한 계급정치로 무장하지 않은 이상, 필연적으로 수세적인 입장에 빠져든다. 즉 이들은 현재 노동자들이 잘 조직되지 않고 있으며, 제대로 투쟁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는 점, 전반적으로 노동운동이 위축되어 있다는 점만을 보면서 암암리에 노동자계급의 잠재력에 대한 불신감을 갖게 된다. 그래서 괜히 ‘과감한 저항’을 조직함으로써 자본가들의 격렬한 탄압만을 자초하느니, 가급적 얌전히 움직이는 것이 더 낫다고 여기는 경우도 등장한다.
가장 선량한 노동조합 간부들도 선의에 입각해 동일한 결론으로 빨려들곤 한다. 현재 노동자들이 싸울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로부터 “노동자들 자신의 투쟁을 준비해야 한다”는 결론을 끌어내는 대신, 준비가 안 된 노동자들을 대신해서 행동하려 하거나, 현장에서의 집단적 투쟁을 조직하기 위한 진지한 시도가 아니라 당장 눈앞에서 손쉽게 조직할 수 있는 개인적 저항에 경도되고 마는 것은 오류이다. 대중과 괴리된 채 진행되는 ‘단식투쟁’이나 ‘1인 시위’, ‘삼보일배’ 등을 주요한 행동방식으로 삼는 것은 노동자의 고유한 집단적 힘을 조직하기 위한 절실한 시도로부터 벗어나는 것으로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투쟁이 잠시 불가피할 만큼 투사들이 대중들로부터 완전 고립되어 개별화된 상황도 있을 수 있고, 또한 대중적이고 집단적인 투쟁의 기폭제로 사용되는 경우도 왕왕 있다. 그러나 이것을 아주 예외적이고 임시적일 뿐만 아니라 가급적 피해야 할 투쟁 형태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노동운동의 원칙으로부터 멀리 도망치는 것이다. 아무리 오래 걸리더라도 노동자의 집단적 투쟁력을 끌어내기 위한 지속적인 시도로부터 벗어나서 당장 손에 잡히는 개인적 투쟁에 급급하게 되면, 결국 노동자가 아닌 다른 계급들, 즉 중간계급과 자본가계급에게 호소하고 그들의 동정심과 시혜에 의존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점차 강화되기 쉽다. 또한 개인적 투쟁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부르주아 언론사들의 취재 등에 과도한 기대를 보내게 된다. 언론사의 취재 말고는 자기 투쟁의 위력을 발견할 길이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들은 심리적으로는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 ‘여론을 중시하는 노동운동’을 반대할지라도, 노동자의 집단적 투쟁력에 의지하지 않은 채 소수의 실천에 집착하는 경우, 그들은 점차 그들이 반대하고자 했던 바로 그 경향으로 실제로는 빨려 들어가게 된다. 부르주아 언론사들의 취재, 기자회견, 다양한 중간계급 시민단체들, 심지어는 경실련 따위의 자본주의를 적극 옹호하는 부르주아 시민단체들의 지지 성명에 과도하게 기대하고 의존하는 어이없는 일들이 전개된다.
반대로 노동자들의 계급적 단결력과 투쟁력, 노동자의 계급의식은 점점 더 약해진다. 투쟁 속에서 ‘뭉쳐야 산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한 노동자들에게 1인 시위 등 개별적인 투쟁을 진행하는 것은 마치 외딴 무인도에 홀로 버려진 것처럼 아득한 것이다. 그런 투쟁방식으로는 결코 스스로 노동자계급의 위대한 잠재력을 느낄 수 없다. 자신감도 추락할 수밖에 없으며, 고립감만이 증대된다. 스스로 자신의 힘을 느낄 수 없는데, 과연 어느 누가 노동자들의 힘을 인정해줄 것인가? 오히려 노동자들이란 힘없고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분위기만이 내부에서 조장된다. 무기력하게 혼자서 피켓을 들고 서 있는 사람들, 하소연할 곳이 없어 묵묵히 삼보일배를 하는 사람들이라는 인상이 대중의 의식 속에 각인되고 만다. 결국 노동자는 사회변혁의 주체가 아니라 기껏해야 사회의 동정심을 통해 근근이 살아갈 수 있는 가엾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노동자들은 부르주아 언론들이나 이러저러한 부르주아적, 중간계급적 시민단체들의 본질을 깨닫고 의식적으로 각성하는 것이 아니라 기자들의 카메라의 흐름에 기대하고, 시민단체들의 성명서에 의존하면서 노동자 의식을 상실해간다. 이런 식의 투쟁은 당장의 사소한 실리를 위해 전개하는 조합주의 투쟁일 뿐, 당장의 사소한 실리를 뛰어넘어 노동해방을 향한 노동자의 의식과 투쟁력을 점차 확대해나가는 진정한 노동자 투쟁이 될 수 없다. 투쟁의 대부분의 성과는 현상과는 달리 대부분 소멸하고 남지 않게 된다.
바로 이런 것이 이른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국민과 함께 하는’, ‘여론을 중시하는’ 노선을 뒤좇는 활동의 필연적 결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관적 자임이 아니라 지도자들의 객관적 노선이고, 이것은 하나하나의 구체적 실천을 통해서만 증명되고 검증되는 것이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항상 좋은 의도로 포장되어 있다”는 격언을 우리는 상기해야 한다. 실체가 불분명한 ‘국민’을 내세우는 순간 노동자계급이라는 명확한 주체는 추락한다. 노동자계급이라는 주체가 추락하는 순간 저 ‘국민’의 실체가 드러난다. 자본가계급과 중간계급들이다. 그들로부터 동정심을 사기 위해 우리 자신을 한없이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이 곧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이다. 그러나 이 형편없는 반동적 노선과 투쟁하는 것은 오직 개인적, 중간계급적 투쟁 형태들을 과감히 거부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그리고 당장의 실리가 없더라도 멀리 보면서 노동자계급의 고유한 투쟁 형태들, 노동자의 집단적 계급투쟁, 그리고 부르주아 언론 및 중간계급 시민단체들로부터의 단호한 독립성을 사수하는 것을 통해서만 비로소 가능해진다.
어떻게 세력관계를 바꿀 수 있는가?
노동해방 운동가들은 아주 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에 접근한다. 스스로 꼬리를 내리며 노동자계급을 다른 계급에게 종속시키려 했던 경향은 매우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이에 대한 비판 역시 오래 전부터 이루어졌다. 1884년 엥겔스는 한 독일 노동운동가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선거는 우리가 순종을 통해서, 즉 적에게 양보하는 것을 통해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는 다름 아닌 과감한 저항을 통해서 존중하게 만들었고 하나의 세력이 되었습니다. 존중받는 것은 오로지 힘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의 세력인 한에서만 속물들은 우리를 존중합니다. 속물에게 양보하는 사람은 속물에게서 경멸받습니다. 속물에게 양보하는 사람은 더 이상 아무런 힘도 없습니다. 부드러운 장갑 아래서도 철권을 느낄 수 있는 법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느끼게 해야 합니다.”
노동자들이 먼저 자본가들에게 누그러진 태도를 취함으로써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이 온건한 태도를 취할 때마다 더욱더 거칠어진다. 노동자들이 전혀 의식적으로 깨어나지 못하고 단결투쟁의 힘을 보이지 못했던 시절,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공돌이, 공순이라고 부르며 비하했다. 경멸과 천대의 대상이었다. 자본가들로 하여금 아무런 힘도 느끼게 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한낱 기계부품, 도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속물에게 양보하는 사람은 속물에게서 경멸받는 것을 자초하는 사람이다.
엥겔스의 주장처럼 노동자들은 “다름 아닌 과감한 저항을 통해서” 존중받는 위치로, 하나의 세력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한국의 노동자들이 최소한 지금의 위치로 전진해오기까지의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어떠한 난관도 두려워하지 않는 단호하고 과감한 저항만이 자본가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줄 수 있었고, 노동자들의 힘을 느끼게 해줄 수 있었다. 우리가 위력적인 힘을 보여줄 때에만 자본가들은 조금이나마 노동자들에게 양보할 필요를 느끼며 몸을 움찔거렸다. 그런데 노동자들은 위력적인 힘을 오직 자신의 계급적 본성에 걸맞는 집단적 투쟁을 통해서만 드러낼 수 있다. 단결투쟁에 나선 노동자계급이 거대한 신체를 드러내며 힘을 보여줄 때 ‘여론’ 역시 노동자의 것이 된다. 기회주의적으로 눈치를 살피며 강한 쪽에 달라붙는 중간계급들은 중립화되거나 그 하층은 노동자들의 편으로 넘어오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분명하다. ‘노동자들에게 등을 돌리는’ 여론 때문에 심리적 압박을 느낀다면, 먼저 노동자들의 과감한 단결과 저항을 조직해야 한다. 적어도 노동자계급 스스로 자신의 힘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더욱더 많은 노동자들이 단결투쟁의 대열로 합류할 것이고, 노동자들은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자본가들을 압도할 만한 위력적인 힘을 내보이면, 나머지 국민 중 일부 즉 중간계급의 하층 역시 우리 편으로 끌어당길 수 있다. 대단히 계산에 밝고 실리주의적인 중간계급들은 철저하게 “누구에게 붙었을 때 더 유리한가?”를 따질 것이며, 오직 노동자들의 힘이 거대하게 조직된 경우에만 중간계급 하층은 노동자계급의 투쟁과 노동해방의 전망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지지를 보내기 시작할 것이다. 동정심에만 호소하려 했을 때 노동자들은 심지어 중간계급에게까지 경멸받는 법이다.
결국 노동운동의 최종적인 진실은 다음과 같다. “만약 노동자계급이 존중받고자 한다면, 노동자계급은 자기 힘을 제대로 동원하는 법을 알아야만 한다! 힘을 갖지 않는 한, 세상은 노동자들을 결코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끝]
노동해방연대(구 미래연대)
이메일 nhaebang@jinbo.net
홈페이지 haebang.jinbo.net(주소창에서 “노동해방”을 치면 바로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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